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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논단]거대 여당과 입법 홍수
입력: 2008년 11월 13일 18:23:28
 
‘ 입법자가 단 세 마디만 수정해도 도서관의 모든 법학서가 휴지가 된다.’ 19세기 독일 검사출신 문필가의 말이다. 학문으로서 법학의 가치가 의문스럽다는 의미이다. 학문은 탐구의 대상이 있고 또 그 대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법학의 대상인 실정법은 늘 개정가능성이 존재하여 가변적인 것이다. 특히 하루가 멀다 하고 실정법이 바뀐다면 법학은 가변적인 법률에 뒤쫓아 다니다 마는 꼴이 될 것임을 걱정하는 말이기도 하다. 법학의 학문성을 의심하는 얘기지만 그렇다고 오늘날 이런 이유로 법학이 학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지 난 국회에서 어렵게 제정되거나 개정된 법률들이 다시 개정될 처지에 놓여 있다. 한두 개의 규정이 고쳐져도 실정법의 해석을 내용으로 하는 법학서를 전부 수정해야 할 판인데, 그 근간까지 바뀔 모양이다. 국가정보원법, 통신비밀보호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등의 개정안 등이 여야 간의 전투를 예고하며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부자감세법안이라고 낙인찍힌 종합부동산세법, 법인세법, 소득세법 등 개정 법률안이 홍수처럼 밀려온다. 방송법과 신문법 개정안도 대기 중이다.

기본권 제한 법률 유독 많아

법은 국민의 생활관계를 규율하는 규범이므로 국민은 법 없이는 하루도 못산다. 그래서 법은 사회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제정되고 또 개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소위 직불금법(쌀 소득 등의 보전에 관한 법률)처럼 실정법이 명백히 잘못되었거나 입법의 흠결이 있다면 당장 고쳐야 한다. 지금 대기 중인 법률안에는 제정이나 개정이 시급한 법률안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극히 일부 국민을 위한 개정안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국내정보의 수집활동 범위를 확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은 국내 정치개입이나 불법한 정치사찰의 기억이 채 사라지기도 전이어서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다. 사이버모욕죄의 신설이나 인터넷 감청법, 감청의 범위를 확대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은 국민의 입을 막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며 반발이 만만치 않다.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면서도 오히려 소통의 도구를 빼앗는 격이다. 당장 시민의 정치적 기본권인 언론·통신·표현·사상의 자유를 위축시키게 될 것이다.

그런데 처벌법을 만들어 놓는 것 자체로 범죄가 예방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그 법이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적용될 때 국민은 법이 살아있음을 인식하게 되고 법위반으로 나아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조변석개(朝變夕改)와 같은 실정법 제·개정은 오히려 법적 안정성을 해치게 된다. 수범자인 국민을 헷갈리게 만든다. 어제는 이랬었는데 오늘은 저렇다면 실정법은 입법자의 자의(恣意)의 산물이라고 여겨지게 되고 결국 법과 입법 권력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또 이념성향이 다른 정권이 들어서면 언제 바뀔지 모를 법률들이 우리가 마땅히 지켜야 할 규범인가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다.

지금 국회에 상정된 개정 법률안을 발의한 쪽에서는 좌편향법률의 원위치화라고 강변하지만 자유민주주의의 원리에 맞는지 의문이다. 시민의 정치적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사회적 약자의 보호에도 힘써야 한다는 사회민주주의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 감세는 곧 국가재정의 축소를 불러오고 결국 복지재정이 손쉽게 삭감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권따라 춤추면 신뢰 가겠나

시민의 기본권 보장과 사회적 약자의 보호는 집권정부의 이념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어느 성향의 정권이 들어선다고 해도 변하지 않아야 할 법의 기본정신이며 원칙인 것이다. 법이 입법적 다수의 자의와 횡포의 결과물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거대 여당은 총선의 결과가 유권자로부터 무소불위의 입법 권력을 부여받은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정치는 자기편만 보듬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조정하고 비판 세력을 끌어안는 노력의 과정이다. 만일 과거 군부독재시절처럼 국민의 목소리를 눌러 잠재우는 손쉬운 도구로서 법을 이용한다면, 진정한 정치는 사라질 것이다.

<하태훈|고려대 교수·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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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jang
일단.. 만들면서 생각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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