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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종로 교보문고 가서 산 책이다.

EBS다큐멘터리 "동과 서" - 해당 프로그램을 EBS에서 찾아보니 2편으로 나뉘어 제작된 2부작 다큐멘터리이다. 예전에 우연히 일부분을 시청했던 게 생각나기도 하고, 그때 참으로 인상깊었던 느낌을 받았기에 선뜻 구매하게 되었다. ^^;;

책으로 부활한 화제의 다큐멘터리 '동과 서'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는 백석 시인의 속삭임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는 서정주 시인의 탄식은 동양인들에게 너무나 자연스런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런데 만약 서양인들에게 유명 문학 작품의 한 구절이라는 사실을 감춘 채 이 문장들을 따로 떼어 들려준다면 그들 역시 쉽게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일까? (본문 44쪽 참조)
2007년 버지니아공대 총기 살인사건 당시 한국계 미국인인 범인을 대신해 한국인들이 촛불집회를 하며 사과의 뜻을 전하고 대통령까지 나서 세 번이나 유감을 표했을 때, 왜 미국 언론들은 황당해하며 “이것은 한국인이 사과할 문제가 아니니 사과를 중단해달라”는 사설을 게재했을까? (본문 226쪽 참조)
동양에서 총명하고 성격 원만한 아이라 칭찬받던 학생이 서양에 유학을 가면 왜 똑같이 공부해도 졸지에 자신감 없고 의존적인 열등생으로 전락해버리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 걸까? (본문 89쪽, 193쪽 참조)
지난 4월, 시청자들의 열띤 호응 속에 방송된 EBS 다큐멘터리 <동과 서>는 이 같은 의문들을 풀기 위해 기획됐다. 그리고 마침내 리처드 니스벳, 펑 카이핑, 헤이즐 마커스, 최인철 등 국내외 심리학 전문가 20여 명과의 심층 인터뷰, 국내외 거주 동서양인 2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거리실험 및 설문조사 등을 바탕으로 꼼꼼히 검증된 이 문화철학 다큐멘터리가 풍부한 그래픽 자료와 함께 단행본 『동과 서』로 다시 태어났다. 이 책은 2회에 걸친 방송 분량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아쉬웠던 많은 청소년 및 성인 독자들에게, 쉽고 간결한 인문교양 다큐북만이 줄 수 있는 지적 만족감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동양인과 서양인은 왜 사고방식이 다를까
[동과 서]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미시건대학교, 일리노이대학교, 스탠포드대학교 등을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중인 최신 동서양 비교문화심리학 연구 결과 및 학자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씌어졌다. 현재 동서양 비교문화 연구는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동아시아 3국, 즉 한국과 일본, 중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말하는 ‘동양’은 기본적으로 한국, 일본, 중국을 중심으로 한 중국 문화권(유교 문화권)을 의미하고 ‘서양’은 미국과 캐나다를 중심으로 한 유럽 문화권을 의미한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기氣와 장場의 사고 vs. 분석적 사고’에서는 명사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서양과 동사를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동양의 ‘인식론적 차이’에 대해 살펴본다. 예부터 서양인들은 이 우주 공간이 텅 빈 허공이라고 믿어왔다. 이렇게 텅 빈 공간에 놓여져 있는 사물은 주변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사물이 독립된 하나의 개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우주가 텅 빈 허공이 아니라 기氣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다.
같은 원리로 서양인들은 두 개의 물체가 떨어져 있으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두 물체 사이의 공간은 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떨어져 있는 물체들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했다. 모든 물체가 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로 가득 찬 공간 속에서 각각의 물체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양인은 일찍부터 밀물과 썰물이 생기는 이유가 지구와 달이 서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달과 지구가 물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것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 18세기 후반까지도 서양인들은 떨어져 있는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했다. 갈릴레오는 조수 작용의 원리에 대한 여러 가지 재미있는 가설을 세웠지만 모두 틀린 것들이었다.

동서양의 이런 인식론적 차이는 언어의 차이로도 이어졌다. 예를 들어 사람이 차를 마시는 상황이 있다고 하자. 이때 차를 더 마실 것인지를 묻는 언어 사용에서도 동서양의 차이가 나타난다.
동양 : (차) 더 마실래?
서양 : (Would you like to have) more tea?
서양인은 더 마실 것인지를 물을 때 ‘tea(차)’라는 명사를 사용해서 ‘more tea?(차 더 할래?)’라고 묻는다. 그러나 동양인은 ‘마시다’라는 동사를 사용해서 ‘더 마실래?’라고 묻는다. 같은 표현인데 동양 언어에서는 동사로 표현되고 서양 언어에서는 명사로 표현된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마시다’라는 동사는 ‘사람’과 ‘차’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표현한다. 동양에서는 이렇게 개체 간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동사적 표현을 많이 쓴다. 그러나 ‘사람’과 ‘차’가 서로 독립된 개체라고 믿는 서양에서는 ‘차’라는 명사를 통해 질문의 의미를 표현한다. 이처럼 사물들이 독립된 개체라고 믿는 서양에서는 당연히 각 개체의 속성을 대표하는 ‘명사’가 언어의 중심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사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동양에서는 다양한 사물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표현하는 ‘동사’를 많이 사용한다.

또 다른 실험 하나. 여기, 한 남자가 절규하고 있는 그림이 있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절규하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동양인 : 주변 분위기가 음산하잖아요. 저 뒤에 걸어가는 남자 두 명이 이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한 것 같은데요.
서양인 : 이 사람은 패닉 상태에 빠졌어요. 마음 속으로부터 깊은 공포를 느끼고 있는 거예요. 정신적으로 불안한 사람인 것 같아요.

동양인들은 대체로 주변의 분위기와 상황을 중심으로 그림 속 인물의 상태를 묘사했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인물의 감정 상태, 정신 상태를 중심으로 설명하는 경향을 보였다. 동양인들은 사람의 감정 상태를 해석할 때에도 그 사람이 처한 환경과 맥락을 고려하지만, 서양인들은 그것을 개인의 내적 본성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제2부 ‘고맥락적 문화 vs. 저맥락적 문화’에서는 텍스트를 둘러싼 맥락과 상황을 중시하는 동양인의 ‘고맥락적 커뮤니케이션’과 텍스트 자체의 의미 자체에 집중하는 서양인의 ‘저맥락적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알아본다. 예를 들어 동서양의 전통적인 인물화들을 비교해보면 소위 ‘컨텍스트’에 대한 동서양의 관심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서양의 인물화는 사람 자체의 속성에만 관심을 갖는 서양적 관점을 반영하여 사람을 크게 그린다. 그러나 동양의 인물화는 항상 그 인물이 처한 맥락을 알기 위해 배경을 함께 그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전체 그림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
현대의 동서양인들에게도 이러한 차이가 나타난다. 서양의 대학생들과 동양의 대학생들에게 친구의 사진을 찍어주도록 했다. 서양의 대학생들은 친구의 사진을 찍을 때 사람이 화면에 꽉 차도록 인물을 중심으로 찍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동양의 대학생들은 넓은 구도로 인물과 배경을 함께 담아 사진을 찍었다. 여행지의 동양인들은 배경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사진을 찍는다. 동양인들은 맥락에 따라 중심 사물도 달라 보이기 때문에 배경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맥락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즐기고 싶어한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인물을 중심으로 사진을 찍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동양인만큼 많은 사진을 찍지 않는다.

제3부 ‘아웃사이더 관점 vs. 인사이더 관점’에서는 집단주의와 물아일체의 정신이 발달한 동양과 개인주의와 과학이 발달한 서양을 비교 분석한다.
A1. ‘내가 좋아하니까 상대방도 좋아할 거야.’
A2. ‘내가 배고프니까 다른 사람들도 배고플 거야.’

B2. ‘사람들이 마음에 들어 하니까 나도 좋아.’
B3. ‘저 사람이 인정해줬어. 잘한 거야.’
A와 B의 두 가지 사고방식이 있다. 당신은 평소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는 편인가? A는 판단의 기준을 내 안에 두는 방식이고 B는 판단의 기준을 나의 외부, 즉 타인에게 두는 방식이다. 서양인은 보통 A의 방식을 취하고 동양인은 B의 방식을 취한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것일까? 연구에 의하면 서양인은 ‘인사이더 관점’을 갖고 있고 동양인은 ‘아웃사이더 관점’을 갖고 있다고 한다. 서양의 투시법, 즉 1인칭 시점은 관찰자의 시선 방향이 안에서 밖으로 향한다. 따라서 투시법을 다른 말로 ‘인사이더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동양인들의 ‘아웃사이더 관점’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신을 보는 것으로서 2인칭 시점, 또는 3인칭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인사이더 관점’을 가진 서양인들은 자기중심적이다. 서양인들은 자기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집중하기 때문에 상대방도 자기처럼 생각하고 느낄 거라 믿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자신이 화가 난 상태이면서 상대방에게 ‘어머, 너 화난 것 같다’라고 말하는 현상이다. 반대로 ‘아웃사이더 관점’을 가진 동양인들은 상대중심적이다. 예를 들어, 동양인은 자신이 슬플 때 상대방이 자신을 보면서 느끼게 될 동정심을 함께 느낀다. 또 수치스러움을 느낄 때 상대방이 자신에게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멸의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이렇게 동양인들은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제4부 ‘집단주의 vs. 개인주의’에서는 교역 문화에 기반한 서양의 개인주의와 농경 문화에 기반한 동양의 집단주의로 인해 생기는 차이점들을 살펴본다. 이를 위해 동양인과 서양인에게 4자루의 파란색 펜과 1자루의 흰색 펜, 이렇게 5자루의 펜을 보여주며 마음에 드는 한 가지를 고르게 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 동양인은 파란색 펜을 가져가는 경향이 컸고 서양인은 흰색 펜을 가져가는 경향이 컸다. 이번에는 4자루의 흰색 펜과 1자루의 파란색 펜, 이렇게 5자루의 펜으로 바꿔서 제시했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 동양인은 흰색 펜을 가져가는 경향이 컸고 서양인은 파란색 펜을 가져가는 경향이 컸다. 위의 실험 결과는 무엇을 의미할까? 제시된 펜의 색깔과 상관없이 동양인은 하나만 튀는 것보다는 여러 개로 제시되어 무난해 보이는 것을 선호했다. 그러나 서양인은 자기만 가질 수 있는 단 한 개뿐인 펜을 선호했다.
동양에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있다. 예부터 개인이 튀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한 것이다. 우리는 ‘다르다’는 말과 ‘틀리다’는 말을 혼동해서 쓰기도 하는데, 이것 역시 남과 다른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을 반영하는 예이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독립적인 삶을 지향하고 자신이 타인과 구분되는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때문에 선택을 할 때도 다른 사람들이 안 고를 것 같은 특이한 선택을 하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 이런 성향이 개인의 독립성을 더욱 강화시킨다.

동양과 서양이 그리는 완벽한 원을 꿈꾸며
이처럼 수많은 심리학 실험들이 밝혀낸 동양인과 서양인의 인지 과정 차이, 사고 방식 차이, 가치관 차이 등은 동서양의 차이가 비단 수천 년 전의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까지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사람들의 행동이나 생각, 태도의 차이가 단순한 문화의 차이에 그치지 않고 철학의 차이, 더 나아가서는 문명의 차이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완벽할 수 없듯이 모든 문화는 완벽하지 않다. 어떤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낫다고 하는 것은 보는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이기 때문에 특정 문화의 우열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런 측면에서 비교문화 연구는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문명의 충돌』의 저자 새뮤얼 헌팅턴은 ‘다른 문화의 사람들도 다 나처럼 생각할 것’이라는 생각이야말로 가장 위험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전쟁과 테러 같은 현대 사회의 분쟁은 대부분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발생하고 있다. 타인에 대한 이해, 차이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반목과 다툼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서양 사고방식 차이의 비밀을 알아보고, 그 같은 차이가 발생하게 된 역사적, 문화적, 심리적 원인을 추적하는 『동과 서』가 우리 스스로에 대한 이해는 물론 타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서양인은 보려 하고, 동양인은 되려 한다.
Westerners want to see the reality,
and Easterners want to be the reality.

― W. 셀든W. Shel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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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archjang
일단.. 만들면서 생각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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