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자주 보이던 탑 이슈 중 하나는...

 

만화 "원피스" 루피의 Gear 5!!

 

아니... 단행본으로 100권이 이미 넘게 나왔던데... 루피는 여전히 무슨 일본풍 나라의 해방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군요.

햐~ 뭐가 이리도 길게 연재를 하냐? 이 에피소드가 그렇게도 중요한 이유가 뭘까 싶었습니다.

어쨌거나 너무 질질 끄는 듯 하여, 근 2년(?) 어! 코로나19 전이니까 대략 3년은 되어 가나 보네요.

원나블 끊은지.. ㅜㅜ

 

그런데, 지난 주 이건 또 뭐냐 싶은...

 

Gear 5 + 태양?

태양신?

니카?

Joy Boy?

 

[반다이] 원피스 악마의 열매 The Devil Fruit 루피 고무고무열매

뭐?!?! 고무고무 열매에 다른 이름이 있다고????!!!!

하더만...

 

태양의 신 '니카'은 뭐냐 싶더니만...

https://namu.wiki/w/%EB%8B%88%EC%B9%B4(%EC%9B%90%ED%94%BC%EC%8A%A4) 

 

아주 오래전 보았던 Joy Boy가 보이네요.

https://maybethere.tistory.com/3455

 

조이보이가 돌아왔다 (원피스 Joy Boy)

조이보이가 돌아왔다 (원피스 Joy Boy) 원피스의 등장인물. 공백의 100년 시기에 살았던, 최소 800년 전의 인물이다. 팬덤에서는 임과 함께 원피스에서 그의 존재 자체가 최대 떡밥인 인물로 여겨

maybethere.tistory.com

 

오래 묵혀놓았던 떡밥으로

https://m.blog.naver.com/hong2ed/120199085841

 

조이보이의 정체, 노아의 약속

'조이보이' 당신은 누구지? 조이보이는 공백의 100년에 실존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어인섬 사람들과 어떤 ...

blog.naver.com

 

이걸 어떻게 연결시킬 건가 싶었는데...

 

만화 설정 상

800년전, 세상 모두를 즐겁게 만드는 "Joy Boy의 의지=D(웃음), 아마도 원피스 세계관에선 원피스?"는 Laugh Tale(사실은 이름없는 섬으로 원피스 세계관 속에서는 세상 끝에 위치한 섬이고, 해적왕 골 D. 로저가 섬에서 무언가를 보고 "이 이름없는 섬"을 '웃긴 이야기'라고 명명하죠.)속에 잠듭니다.

하지만, 이 의지(혹은 원피스? ^^)는 공백의 100년 속에 단절되고 사람들의 역사와 기억 속에서 조차 사라집니다.

 

이후 잊혀졌던 Joy Boy의 의지는,

뜻하지 않게도 위대한 항해 끝에 라프텔(Laugh Tale)에 도착한 해적왕 골 D. 로저에 의히여 세상에 알립니다. 이때부터는 Joy Boy의 의지가 아닌 '원피스'라고 불리는 거 같아요. 이유는 아마도 공백의 100년을 알고 있는 로저가 세계정부의 부당한 지배 체제를 무너뜨리고자, 해적들 포함 자유를 원하는 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 같습니다.

 

암튼, 웃으며 참수형을 당하는 골 D. 로저의 모습에, 우리의 주인공 몽키 D. 루피도 꿈을 키우죠.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웃음=D을 잃지 않고, 주변 인물들의 자유 쟁취에 앞장 섭니다.

(그동안에 진행되어온 내용만 보자면 그저그런 소년의 성장드라마였는데...)

 

태양의 신 '니카'의 등장은, 

Joy Boy -------------------------- 몽키 D. 루피 와의 연결선을 그어주는 큰 이슈라 생각이 듭니다.

 

지금껏 루피가 이루어온 행적은 태양의 신 '니카'의 이야기가 아니라,

800년전 신비한 인물인 "Joy Boy"의 행적, 그리고 그가 "이름없는 섬(Laugh Tale)"에 남긴 "무언가(원피스)"와 연결되는 듯 합니다.

 

과연 라프텔에 있는 원피스가 무엇일까 궁금해집니다.

제 추측은, "공백의 100년"의 진실(역사)이 아닐까 싶은데... ^^

세상의 역사나 진실은 누군가에겐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죠. ㅎㅎ

 

암튼, 루피가 원피스에 가까워질수록 "Joy Boy의 의지"가 세상에 실현되는게

800년전 사라진 Joy Boy의 안배가 아닐까 싶네요.

 

흐음... 글 쓰다보니 GEAR5는 그저 소품일 뿐...

'Read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펌글] 콜센터 녹취에 관한 QnA  (0) 2013.10.07
이현세 화백의 "아마겟돈"  (6) 2009.03.27
경향신문 - 2008.11.21(금)  (0) 2008.11.24
수학으로 생각한다.  (0) 2008.09.30
매너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0) 2008.09.16

WRITTEN BY
archjang
일단.. 만들면서 생각해보자. ^^

,


http://callcenter.tistory.com/180

'Read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피스] 원나블~ Joy Boy = D  (0) 2022.03.25
이현세 화백의 "아마겟돈"  (6) 2009.03.27
경향신문 - 2008.11.21(금)  (0) 2008.11.24
수학으로 생각한다.  (0) 2008.09.30
매너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0) 2008.09.16

WRITTEN BY
archjang
일단.. 만들면서 생각해보자. ^^

,
이현세 화백의 "아마게돈 아마겟돈"
0123456789


어린 시절.. 만화책을 많이 본 거 같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현세 화백의 "아마게돈"..

아마게돈(아마겟돈)이란 뜻이 인류 최후의 전쟁이란 뜻이었던가.. 해서 어린 마음에 참 열심히 보았던 거 같다.

내용 전개 중 하나둘 나타나는 캐릭터들은 그당시 재밌게 보던, 그리고 흥미로웠던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신화를 모티브로 하여서 더욱 관심이 갔다.

오늘.. 우연찮게 옛 기억이 떠올라 만화를 찾아서 보았다.

어릴 적에 봤을 땐, 여주인공들의 노출이 더 심했던 거 같은데.. 보는 내내 이상하리 만큼 야하지 않았다. 흠.. 이젠 성년이라 그런가 하며 갸웃갸웃 고개를 흔들며 열심히 읽었다.

총 13권짜리 만화.. 근데, 결말에 다와가며 스토리 전개상 가장 중요한 소재가 나타났다. 하데스가 남주인공(오혜성)에게 주는 권총 한자루.. 맞다, 저게 정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음.. 근데 어떤 역할을 하더라...? 기억이 안났다.

그래.. 계속 읽으면 나오겠지.. 그런데, 가장 클라이막스여야할 최후의 적과의 싸움이 끝나자 뭔가 허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라? 이게 끝이던가?

그러나, 아직 만화는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장 <제39장 종장, 앗시리아를 찾아서>이 하나 더 남은 거다.

길을 잃은 것처럼 송출되는 마지막 메시지.. 그 끝을 찾아 떠나는 오혜성.. 그래, 결말이 뭐였더라~!!

근데, 갑자기 이상하다. 왠지 낯설다. 적어도 20여년 전 기억 속의 만화를 쫓아 더듬어가던 나의 뇌에서 생소하다는 느낌을 보낸다. 저게 결말이던가.. 아닌거 같은데..

이상하다... 생소하다... 어릴 적 나에게 충격을 줬던 결말이 아니다. 지금 보는 만화의 결말이었다면 난 이 만화를 20여년전 이미 잊었을 거다. ㅜㅜ

만화를 끝까지 보자마자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다. 온갖 웹사이트에서 엄청난 스케일의 전재와 달리 허접한 결말이라며 졸작이란다. 흠.. 맞다. 지금의 결말이라면 정말 졸작이다. 내 머리 속에 각인된 결말은 이게 아니었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게 아니었다. 뭐였던가..?

이제 그 결말의 실마리를 찾았고, 대충 기억 속에서 결말을 찾아냈다.

내 어릴 적, 날 상상의 나래로 이끌던 그 결말이다....

------------------
오혜성은 6666(초자아 컴퓨터)이 폭발하면서 마지막으로 송출한 전파의 목적지를 향해 끝없이 추적해간다. (어떻게 도착하는지 기억이 안나지만) 오혜성은 전파의 끝자락에서 고도의 문명을 가진 도시의 한 주택으로 찾아간다. 그 도시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모두들 오혜성의 전투복 복장에 눈길을 주지만, 직접적인 접촉이나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그저 스쳐 지나간다.

오혜성은 그런 사람들에게 일면 반가우면서도 어리둥절해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설명해줄 존재가 바로 6666이 마지막으로 전송한 전파의 수신자일거라 생각하며 그곳으로 간다.

그가 간 곳은 한 미래 주택이다. 문은 자동으로 열린다. 그리고, 그를 한 사람에게로 이끈다. 그곳엔 한명의 작가가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오혜성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본다. 계속 글을 쓰던 사람은 오혜성에게 눈길을 주고 이내 글쓰는 것을 멈춘다.

오혜성과 그 사람의 대화가 오간다.

"당신은 6666 과 어떤 관계입니까?"
"창조주이다."
허름한 그의 모습에 일순 오혜성은 당황한다. 그리고, 묻는다.
"인류말살계획이란 무엇입니까?"
"내 작품의 소재일세"
"당신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면 우리는 무엇입니까?"
"내 소설의 이야기일 뿐이다."
"왜 우리를 모두 죽였습니까? 모두 파괴할 것이라면 왜 창조를 하였습니까?
오혜성은 끌어오르는 분노에 몸서리 친다. 이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창조주가 설명을 해준다.

"난 우주에서 가장 뛰어난 소설작가다. 난 인류말살계획이란 주제로 소설을 쓰고 있다. 너희는 단지 내 소설의 등장인물들일 뿐이다. 내가 죽이던 살리던 그건 소설가인 나의 마음이다."
오혜성은 소설가의 말에 절규를 한다.
"당신이 창조주일지라도 우리를 함부로 죽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창조주라면 모두 제자리로 돌려주십시오"

하지만, 소설가는 무시해 버린다. 그리고, 창조주인 자신에게 존경을 않고 화를 내는 오혜성에게 화를 낸다.
"소설 속 주인공이라 특별히 창조주인 나를 만날 수 있도록 했는데, 감사하지 못할 망정 화를 내다니 버르장머리가 없구나. 썩 꺼져라"
"당신이 창조주라면 난 당신을 죽이겠소."
"하하하.. 네녀석은 날 죽일 수 없다. 네가 가진 모든 능력은 내가 준 것이니 날 죽일 수 없다."
당당하게 웃어대는 소설가에게 오혜성은 총을 겨눈다. 그리고, 방아쉬를 당기자 "탕!!"하는 소리와 함께 소설가는 쓰러진다. 소설가는 쓰러지면서도 자신이 죽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린다.
"난 분명 레이저가 내 앞에서 소멸되도록 입력했는데.. 어떻게...?"
"이건 레이저광선총이 아니라 총알이 나가는 권총입니다. 당신은 이것을 생각지 못했습니까?"
"어떻게 권총이 이시대에 존재한단 말인가?"
이렇게 반문하며 소설가는 숨을 거둔다.
-------------------------------

이후 결말은 더이상 기억이 안난다. 누구 말처럼 그 도시에서 소설가를 죽인 이유로 뒤쫓기다 깨어보니 꿈이었더라 하는 결말이었는지.. 아니면, 지구로 돌아가게 되는지.. 정말 기억이 안난다. ㅜㅜ;;

하지만, 권총은 이 만화의 결말을 이끌어내는 가장 중요한 소재이다. 하데스가 권총을 넘기던 순간, 아마도 하데스는 어느정도 이러한 사정을 상상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등장인물 중 가장 현명하던 인물이 하데스였고, 자신의 모태였던 초자아 컴퓨터 조차 뛰어넘는 지혜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벽 1시 40분.. 내가 이 늦은 시간, 이렇게 글을 길게 쓰는 건... 내 어릴 적 상상의 나래를 펼쳐줬던 아마겟돈의 결말이 기억이 안나기 때문이다. 방금 전까지 읽은 "아마겟돈"의 결말이 너무나 허무하게 수정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본 만화가 원작이 아니기에 너무 슬프다. 여주인공들의 나신은 원래 있었던 거였다. 이번 만화가 수정되었기에.. 아마도 삽입되었던 그림들이 수정된 거 같다.

너무 안타깝다. 왜 수정되었을까? 너무 야해서, 너무 결말이 이상해서?

하지만, 내 기억 속 그림들과 결말들이 더 좋았다면 나만의 주관적 견해인가? 마치 향수를 그리며 옛날 먹던 음식맛을 그리며, 맛집을 찾아다니는 미식가처럼..? ㅜㅜ

아~ 가물가물한 내 기억보다 더 또렷한 결말인 듯 하다. 잊지 않고자 출처와 함께 글을 옮겨본다. ^^

<<<<<<<<<<<<<<<<<<<<<<<<<<<<<<>>>>>>>>>>>>>>>>>>>>>>>>>>>>>>

<글 출처 : http://blog.naver.com/hopekmw?Redirect=Log&logNo=140021603098>

서기 2100년쯤의 미래..

지구는 외계인의 침략을 당하여 거의 멸망직전에 이르는데

그때에 드러나는 지구 창조의 신비..

 

먼 옛날 아주 앞선 문명의 외계인이

우주을 항해하며 생명창조의 가능성이 있는 행성들에 진화를 도와주는 수퍼컴퓨터를 심는데

태양계에는 지구와 또 다른 행성(마스?)에 각각 컴퓨터 A100001  과 B100001을 심는다

 

지구는 A10 의 특성에 따라 온건하고 이성적인 인류가 번성을 하게 되고

마스는 B10 의 특성때문에 호전적인 종족이 문명을 발전시킨다..

 

그런데 이 마스 혹성이 아주 앞선 무기를 가지고 지구를 침략하게 된것이다..

그때 이러한 상황을 처음부터 예상했던 지구의 A10 컴퓨터는 최후의 전쟁에서 지구를 구할

전사를 미리 설계하였고 이 전사가 2100년 한국의 서울에 사는 오혜성이었다...

 

오혜성은 마침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되고 인류최후의 전쟁 아마겟돈은 이렇게 시작된다...,

 

-----------------------------------

 

20년전 쯤  대학가의 만화방에서 읽었던 이현세의 만화 "아마겟돈'

기억이 맞는 지는 모르겠지만 대강 이러한 내용이었고 당시에 상당히 쇼킹하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 이현세의 완전 창작물은 아닌걸로 생각되고 '오딧세이2005' ?등의 공상 과학소설등을 본딴것처럼 보이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대사가 있다

 

A10 의 전사 오혜성에 맞서 B10 이 마스를 위해 설계한 (기계)전사는 뜻밖에도 혜성이를 좋아하던

동네 아가씨  '설희' 였는데

혜성과 설희의 대 격투.. 설희는 마지막 순간 자신의 무기를 거둬들여 스스로 죽음을 택하면서

이런말을 한다

 

"내가 무엇인지 몰라요.. 내가 기계인지.. 인간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그래도 난 당신을 사랑합니다.. 영원히.."

 

결말이 어떻게 되냐고..

글쎄 혜성은 많은 동료들의 희생에 힘입어 마침내 마스의 심장부로 쳐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맞닥뜨린 또 하나의 진실...

지금까지의 모든것이 초고도문명의 행성에 사는 한 소설가의 '우주과학소설'이었다는것..

 

극도의 혼돈과 비탄에 빠지는 혜성을 앞에두고 모두 예정된 것이었다며

그 소설가는 너털 웃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혜성은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

....

....

 

이런류의 이야기를 읽으며 자못 심각했던 적이 있었다..

삶과 우주. .그리고 생명...

어려서 였을까

젊어서 였을까..


<<<<<<<<<<<<<<<<<<<<<<<<<<<<<<>>>>>>>>>>>>>>>>>>>>>>>>>>>>>>

추가수정 : 2012.01.02

우와~ 대본소판 일부분을 올리신 분이 있어 추가합니다. ^^

http://sas7273.blog.me/90035601924


'Read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피스] 원나블~ Joy Boy = D  (0) 2022.03.25
[펌글] 콜센터 녹취에 관한 QnA  (0) 2013.10.07
경향신문 - 2008.11.21(금)  (0) 2008.11.24
수학으로 생각한다.  (0) 2008.09.30
매너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0) 2008.09.16

WRITTEN BY
archjang
일단.. 만들면서 생각해보자. ^^

,
[서재에서]한옥, 다시 사랑받을까
입력: 2008년 11월 21일 17:42:43

어 언 40년째 한옥에서 살고 있는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는 이론적으로 완전 무장한 한옥 전도사다. 서울 동소문동의 80년 넘은 전통 한옥에서만 35년째 산다. 그는 1968년 평화봉사단원으로 강릉의 조선시대 고택 선교장(船橋莊)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한옥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한국에 눌러앉은 것도 한옥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그에게 전통 한옥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다. 자연 속에 녹아 든 전통미와 사방이 열려 있는 동양적 여백미를 갖춘 예술품이다. 그의 한옥예찬은 비교건축론으로 기를 죽인다.

“중국 전통 건축물은 ‘나는 이렇게 부자고 힘이 세다’는 오만한 느낌을 준다. 일본 전통 건축물은 너무 깔끔해서 정이 가지 않는다. 이에 비해 한옥은 부드러운 곡선이 ‘어서 오세요’ 하며 따뜻하게 맞아주는 듯한 포근함이 감지된다. 그래서 한옥을 고려청자만큼, 유럽의 모나리자 그림만큼 중요한 보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는 ‘한국의 혼’ 같은 한옥을 헐어버리고 아파트를 지은 뒤 ‘돈 벌었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열불이 난다. 지금 살고 있는 곳도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면서 애지중지하는 한옥을 떠나야 할 위기여서 한결 그렇다.

한편에서는 이처럼 한옥을 푸대접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한옥 열풍이 뜨거워지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서울 북촌이나 전주의 한옥마을 같은 곳을 찾는 이가 몰라보게 늘어나는 것과 비례해 집값도 크게 올랐다는 풍문도 있다. 서울대에 ‘한옥 짓기’ 강좌가 이번 학기에 처음 개설된 것도 같은 흐름으로 봐도 좋을 듯하다. 이것도 한옥의 복권이라 해야 할까. 덩달아 한옥에 관한 책도 어느새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가 나올 정도가 됐다.

한옥을 사랑하고 한옥 지킴이를 자처하는 ‘새로운 한옥을 위한 건축인 모임’이 펴낸 <한옥에 살어리랏다>(돌베개)가 대표적이다. 이 책은 한옥의 멋스러움과 현대적 거주 공간으로서의 장점을 소담스레 얘기하듯 들려준다. 서울의 북촌 한옥마을에서부터 제주도의 전통 초가에 이르기까지 27채의 한옥이 등장한다. 국내 유일의 한옥 동청사인 서울 혜화동사무소, 치과병원으로 정겹게 활용되는 한옥 등 300여 컷의 컬러 사진과 100여 컷의 도면까지 보태져 살갑게 ‘보며 읽을’ 수 있는 실용서이기도 하다.

한옥을 ‘여유가 있는 집’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집’ ‘비울수록 채워지고 나눌수록 커지는 집’이라고 한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정의가 그윽하다. 서울 강남에서 살다가 능소헌과 청송재로 이사와 십수 년째 살고 있는 풍경사진가 조향순씨의 글 가운데 한 대목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아이가 초등학생 시절 ‘우리 집’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렸는데 도화지에 네모반듯한 아파트를 그렸다. 그것만으로는 구별하기 힘들겠다고 판단했는지 아이는 그림 옆에 ‘00아파트 00동 00호’라고 써놓았다.” 조씨에게 한옥은 자식들을 건전한 사고와 관용을 갖춘 자유인으로 키우기에 적당한 집이다.

한옥이 어떻게 변해야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해답을 준다.

우리네 주거공간 가운데 아파트 비중이 전체 주택의 60%에 육박하고, 남은 한옥 가운데 50%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한옥’이란 낱말이 새우리말큰사전에 처음으로 등재된 게 1975년이라니 사라져감에 대한 안타까움의 산물이 아닌가.

<아파트 공화국>이란 책을 펴낸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얼마 전 잠깐 화제가 됐던 기억을 되살리면 뜨끔하다. 줄레조 왈. “서울은 아파트 때문에 하루살이 도시다.” 이렇게 일갈한 외국인도 봤다. “유럽 국가들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옛 도시를 복원하겠다고 나서는데 한국은 멀쩡한 과거 유산을 재개발 명목으로 없애고 있네.” 하긴 아파트에 살고 있으면서 한옥 예찬론을 들먹이고 있으니 이 또한 역설이 아니고 뭔가.

<김학순 선임기자 hskim @kyunghyang.com>

WRITTEN BY
archjang
일단.. 만들면서 생각해보자. ^^

,

수학으로 생각한다.

Reading 2008. 9. 30. 14:13
수학으로 생각한다.
 
고지마 히로유키 지음 / 박지현 옮김
박경미 감수 / 동아시아 출판
 
 서론 中에서 - 발상의 전환 : 픽션 감각을 키워라
 
초등학교에서 수학 문제들을 해결하는 해법에는 또 하나의 독특한 발상이 숨어있다. 바로 '픽션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전형적인 예는 앞에서 살펴본 '학과 거북이의 수를 구하는 문제'다. 앞에서는 '모두 거북이'라고 가정했다. 이렇게 '모두 거북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픽션' 즉 '허구'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허구'에 불과하던 가정이 정답의 길잡이가 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가설'과 '픽션' 그 자체는 참이 아니더라도 그것은 우리를 정답으로 안내해준다.
잘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어린이에게 가장 중요한 과목은 수학과 국어이다. 이 두 과목에 공통적으로 픽션이 관련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국어는 '이야기'라는 픽션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현실이 아닌 '가공의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관찰하여 삶의 희로애락을 배우게 된다. 수학과 국어에서 픽션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보면 픽션이 '사고의 틀'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즉 픽션은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도구라 할 수 있다.
과학자가 '몽상가'처럼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 픽션 감각 때문이다. 몽상은 사람들에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과학자 본인에게는 자신의 인생관에서 비롯된 절실한 현실세계이며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발상의 안경'이므로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다.
 
=========================================================
 
건축설계를 하다보면 늘 느끼는 불안감이 있다. 바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설계가 과연 제대로된 것인가 하는 의심에서 시작되는 자신의 설계능력에 대한 불안감이다.
하지만, 설계는 바둑판 위의 경기 수만큼이나 많은 경우의 수를 가지고 있다.
내가 원하는 건축과 건축주가 요구하는 건물, 시공업체의 시공능력, 건축비, 건축 관련 법규 등에 의해 수없이 깎이고 파여야만 비로서 실제 존재하는 건축이 되는 법이다.
 
하지만, 깎이고 파이는 동안 내가 해놓은 설계는 여지없이 지워지고 수정된다. 그러다보면, 나름 아무리 치밀하게 설계했다손 쳐도 타인에 의해 평가절하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때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럴거면 진작에 이야기해주던가.. 당신이 직접하지 그래.. 등등" ㅡㅡ;; 한마디로 짜증이 솔솔~
 
그러나..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는 상황에서 어떤 것이 좋은가는 딱히 집어낼 수 없다.
 
하나의 가정이.. 즉, 내가 만들어내는 계획안이 가정이 되어 해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위 책의 서론에서처럼, 내가 만든 계획안은 하나의 가정이 되어 (비록 건축적 해답이 아닐지라도) 건축주가 원하는 건물을 만들어내는 지름길이 되는 것.
 
^^;; 설계안이 휴지통에 들어가더라도 좌절은 없다.. ㅋㅋ
 
----------------------------------------------------------
 
그것말고도.. 꿈이 사라지는 문제에 대한 해답도 얼른 찾아야 할텐데.. ^^;;

WRITTEN BY
archjang
일단.. 만들면서 생각해보자. ^^

,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요즘 읽고 있는 책이다. ^^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 실험 10장면'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로렌 슬레이터 지음


[3. 엽기 살인 사건과 침묵한 38명의 증인들] 중에서...

중략...

이제부터 이야기가 흥미로워진다. 이 실험은 그 어떤 실험보다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어리석음 그 자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간은 대열을 무너뜨리느니 차라리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존재라는 것, 생존보다 사회적 예절을 더 중시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너무나 상반된다. 매너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욕정보다 강하고, 두력움보다 원초적이다. 달리와 라타네가 피실험자 단 한 명을 연기 나는 방 안에 두고 실험을 했을 때는 모두 다 그것을 비상 사태로 파악하고 그 사실을 '당장' 보고했다.

           *        *        *
우리는 모두 모방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인 것이다.

중략...

===================================================
근래에 읽은 '이기적 유전자-리차드 도킨스 저'란 책에서 보면.. 초식동물의 무리짓는 성향을 분석한 글이 있다. 이때 저자는 초식동물의 무리짓는 성향을 가진 유전자가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즉, 자신과 포식자 사이의 거리를 계산함에 있어 무리를 이루는 경우 자신이 포식자에게 노출되는 거리가 짧아져 안전해진다고 한다. 또한 어쩔 수 없이 무리의 테두리에 위치하는 동물은 되도록 무리 중심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초식동물들의 무리짓는 성향은 가속화된다.

저자 '로렌 슬레이터'는 이를 사회심리학의 관점에서 그 풀이를 진행한다. 과연.. 어떤게 맞는 걸까? 우리 인간의 유전인자 중 초식동물이 무리짓는 습성과 같은 성향을 가진 유전자가 있어서 무리를 지어 그 대열에서 이탈하려는 것을 억제하는 것은 아닐까?

한편 역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는 문제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나타나는 초식동물들의 포식자에 대한 반응을 보면 우리 인간으로서는 참 초식동물들이 어리석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바로 수천수만 마리의 초식동물들이 몇몇 포식자에 늘상 잡혀먹히면서도 대항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의문이다. 그들은 포식자에 의해 갈팡질팡하며 도망치다가도 포식자가 사냥을 성공하면 포식자로부터 어느정도 거리만을 두고 다시금 유유히 (고개를 숙이고 풀을 뜯으며) 식사를 한다. 옆에서는 포식자에 의해 먹히고 있는 동료가 있으나 마나다. 자신의 안전이 확보되면 동료가 죽던말던 신경을 쓰지 않는다.

1964년 3월 13일 금요일, '13일의 금요일' 뉴욕에서 발생한 엽기적인 살인,강간사건과 이러한 끔직한 일이 35분간 3차례에 걸쳐 진행되었음에도 방관하고 침묵한 목격자들의 행위가 초식동물과 유사한 것은 우연일까?

과연 38명의 목격자들이 침묵한 이유는 초식동물과 같은 유전자적 요인이 클까? 아니면, 사회심리학에서 분석한 '방관자 효과(어떤 사건에 대해 방관하는 집단에 속해 있을 경우, 타인을 돕는 행위가 방관하는 집단에 의해 억제된다는 것)나 베르터 효과(젊은 베르터의 슬픔에서 따온 말로, 자살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나면 일정기간동안 의문의 자동차 사고, 열차 사고, 비행기 추락사고 등이 급증하는 현상, 일종의 모방 자살로 보는 것)'에 의한 요인이 클까?


WRITTEN BY
archjang
일단.. 만들면서 생각해보자. ^^

,

EBS다큐멘터리 '동과 서'

다큐멘터리의 제작의도는 동양인과 서양인의 생각과 시선, 인식, 가치관 등의 차이를 밝히고 그로 인해 발행하는 문제들(의견충돌, 오해 등)을 어떻게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책으로 읽으면서.. 아쉬운 점은 책 내용이 너무 가벼웠다는 점이다. TV는 한정된 시간동안 모든 것을 밝혀야 하므로 아무래도 흥미 위주, 비주얼 위주 였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다큐멘터리의 일부분을 시청했던 적이 있으므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때에도 느낀 건 동서양의 인식론의 차이라든가, 대상을 바라보는 시점의 차이 등은 CG(컴퓨터 그래픽)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실험과 인터뷰를 통해 흥미롭게 다가온 반면, 전문가와의 인터뷰는 너무나 간결하고 피상적이고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았기에 다큐멘터리가 밝힌 제작의도와는 달리 우린 다르다란 사실(동서양이 다르다는 건 세상사람 모두가 잘 아는 진실에 가까운 사실이다)만 언급하는 것으로 끝나 버렸다.

물론 다큐멘터리 전반에 관하여는 언급할 수 없다. 다 보지 않았으니까 ㅡㅡ;; 하지만, 인지론이라던가 분석학, 동서양의 철학 등에 대한 언급이 너무나 피상적이었고 단편적이었음은 말할 수 있다. 이는 2부작 다큐멘터리의 한계였을지도 모른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읽은지 3일 지났건만 ㅡㅡ;;), 책 서문에 제작진들은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1년여의 자료준비기간을 가졌으며, 4개월간의 촬영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정말 방대한 자료가 있을 것이며, 다큐멘터리를 위해 적극 응대한 전문가들의 주옥같은 인터뷰 및 편집되어 사라진 부분들 등이 있을 것인데...

책엔 그 내용이 없다. ㅡㅡ;;(토요일 오후에 책사고, 월화 이틀간 출퇴근 시간에 다 읽어버렸다. 딱 3시간.. 책 내용이 얼마나 빈약한지 추측되리라..) TV에서 2부작으로 반영되는 시간적, 공간적, 물질적 한계가 있었기에 주요한 부분만을 다듬고 편집하였다면 이해는 가지만, 어찌된게 책으로 출간하면서도 방영된 다큐멘터리 내용에서 조금도 더 나아가지 못했는지 아쉽다.

책 내용은 단순히 다큐멘터리의 시간적 진행에 따른 나레이터의 대본과 TV에 사용된 인터뷰, CG만이 한컷 내지 2~4컷으로 된 삽화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저, TV로 못본 시청자들에게 다큐멘터리 내용을 책으로 만든 것 뿐이었다.

책 내용이 어설펐다거나, 너무 수준이 낮았다는 건 아니다. 다만, 이 다큐멘터리가 TV매체로 인해 가졌을 표현의 한계를 책이란 매체를 통해 충분히 뛰어 넘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영된 다큐멘터리의 틀 안에서만 끝낸 점이 아쉽다.

제작진이 그렇게 공들인 제작 전 준비기간동안 축적되었을 방대한 자료와 정보,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얻었을 고급 자료, 문헌, 정보들이 책에 실리지 않았음이 아쉽다. 제작진도 시청자와 같은 비전문가이므로 인터뷰에 응한 각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은 인터뷰에서 그들(제작진과 시청자)에게 더 쉽고 편하게 지식을 전달하고자 많은 이야기와 정보를 제공 했을텐데 그런 부분들이 책에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는 건.. 책으로 엮은 이의 안일함과 게으름은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나 책의 크기와 달리 유달리 커보이는 활자 크기며, 폰트의 어눌함, 책 테두리 여백은 왜그리 좁게 만들었는지(책을 보는 내내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또, 책 중간중간 들어가는 삽화의 배경그림은 정말... ㅡㅡ;;

책 보는 맛을 반감시키는 역할만 하더라..

EBS다큐멘터리 "동과 서" 란 책은 동양인과 서양인의 생각의 차이를 제작진의 참신한 눈(전문가집단이 아닌 시청자집단의 수준)으로 쉽게 풀이하여 편히 읽을 수 있는 교양서적임에는 충분하다. 하지만, TV에 반영되기 까지, 책으로서 출간되기 까지 제작진이 접하였을 자료와 문헌, 정보 등이 첨가되지 않아 참 아쉬웠다. 이후에라도 자료보강을 더한 증보판이 나온다면 좋겠다. ^^
 
마지막으로 한마디.. 책구성을 누가 했는지 모르겠으나, 책의 어설픈 구성은 정말 뷃~!! 였다. ㅡㅡ;;


WRITTEN BY
archjang
일단.. 만들면서 생각해보자. ^^

,
요즘 영화로 이슈화 되고 있는 동명영화 20세기소년의 만화 원작이다.

영화를 시사회 등으로 본 사람들의 리뷰 등을 보면 다들 만화를 보게 된다고 한다. ^^;; 그래서 난 영화보다 만화를 먼저 보기로 했다.

어제 1권 읽었는데.. 아직은 재밌는지 모르겠더라!! ^^;;

만화 리뷰도 찾아봤는데.. 20세기 소년 제1~22권, 21세기 소년 제1~2권으로 끝나는데.. 마지막 종결부분인 2권을 21세기 소년이라고 제목 바꾼 데에도 작가의 심오한 뜻이 있다더라.. 뭔지는 다읽어본 후 찾아보던가.. 나름 추측해보던가 해야겠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Read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향신문 - 2008.11.21(금)  (0) 2008.11.24
수학으로 생각한다.  (0) 2008.09.30
매너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0) 2008.09.16
EBS다큐멘터리 "동과 서"를 읽고..  (1) 2008.09.10
EBS다큐멘터리 "동과 서"  (0) 2008.09.08

WRITTEN BY
archjang
일단.. 만들면서 생각해보자. ^^

,

토요일에 종로 교보문고 가서 산 책이다.

EBS다큐멘터리 "동과 서" - 해당 프로그램을 EBS에서 찾아보니 2편으로 나뉘어 제작된 2부작 다큐멘터리이다. 예전에 우연히 일부분을 시청했던 게 생각나기도 하고, 그때 참으로 인상깊었던 느낌을 받았기에 선뜻 구매하게 되었다. ^^;;

책으로 부활한 화제의 다큐멘터리 '동과 서'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는 백석 시인의 속삭임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는 서정주 시인의 탄식은 동양인들에게 너무나 자연스런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런데 만약 서양인들에게 유명 문학 작품의 한 구절이라는 사실을 감춘 채 이 문장들을 따로 떼어 들려준다면 그들 역시 쉽게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일까? (본문 44쪽 참조)
2007년 버지니아공대 총기 살인사건 당시 한국계 미국인인 범인을 대신해 한국인들이 촛불집회를 하며 사과의 뜻을 전하고 대통령까지 나서 세 번이나 유감을 표했을 때, 왜 미국 언론들은 황당해하며 “이것은 한국인이 사과할 문제가 아니니 사과를 중단해달라”는 사설을 게재했을까? (본문 226쪽 참조)
동양에서 총명하고 성격 원만한 아이라 칭찬받던 학생이 서양에 유학을 가면 왜 똑같이 공부해도 졸지에 자신감 없고 의존적인 열등생으로 전락해버리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 걸까? (본문 89쪽, 193쪽 참조)
지난 4월, 시청자들의 열띤 호응 속에 방송된 EBS 다큐멘터리 <동과 서>는 이 같은 의문들을 풀기 위해 기획됐다. 그리고 마침내 리처드 니스벳, 펑 카이핑, 헤이즐 마커스, 최인철 등 국내외 심리학 전문가 20여 명과의 심층 인터뷰, 국내외 거주 동서양인 2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거리실험 및 설문조사 등을 바탕으로 꼼꼼히 검증된 이 문화철학 다큐멘터리가 풍부한 그래픽 자료와 함께 단행본 『동과 서』로 다시 태어났다. 이 책은 2회에 걸친 방송 분량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아쉬웠던 많은 청소년 및 성인 독자들에게, 쉽고 간결한 인문교양 다큐북만이 줄 수 있는 지적 만족감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동양인과 서양인은 왜 사고방식이 다를까
[동과 서]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미시건대학교, 일리노이대학교, 스탠포드대학교 등을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중인 최신 동서양 비교문화심리학 연구 결과 및 학자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씌어졌다. 현재 동서양 비교문화 연구는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동아시아 3국, 즉 한국과 일본, 중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말하는 ‘동양’은 기본적으로 한국, 일본, 중국을 중심으로 한 중국 문화권(유교 문화권)을 의미하고 ‘서양’은 미국과 캐나다를 중심으로 한 유럽 문화권을 의미한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기氣와 장場의 사고 vs. 분석적 사고’에서는 명사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서양과 동사를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동양의 ‘인식론적 차이’에 대해 살펴본다. 예부터 서양인들은 이 우주 공간이 텅 빈 허공이라고 믿어왔다. 이렇게 텅 빈 공간에 놓여져 있는 사물은 주변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사물이 독립된 하나의 개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우주가 텅 빈 허공이 아니라 기氣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다.
같은 원리로 서양인들은 두 개의 물체가 떨어져 있으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두 물체 사이의 공간은 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떨어져 있는 물체들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했다. 모든 물체가 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로 가득 찬 공간 속에서 각각의 물체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양인은 일찍부터 밀물과 썰물이 생기는 이유가 지구와 달이 서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달과 지구가 물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것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 18세기 후반까지도 서양인들은 떨어져 있는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했다. 갈릴레오는 조수 작용의 원리에 대한 여러 가지 재미있는 가설을 세웠지만 모두 틀린 것들이었다.

동서양의 이런 인식론적 차이는 언어의 차이로도 이어졌다. 예를 들어 사람이 차를 마시는 상황이 있다고 하자. 이때 차를 더 마실 것인지를 묻는 언어 사용에서도 동서양의 차이가 나타난다.
동양 : (차) 더 마실래?
서양 : (Would you like to have) more tea?
서양인은 더 마실 것인지를 물을 때 ‘tea(차)’라는 명사를 사용해서 ‘more tea?(차 더 할래?)’라고 묻는다. 그러나 동양인은 ‘마시다’라는 동사를 사용해서 ‘더 마실래?’라고 묻는다. 같은 표현인데 동양 언어에서는 동사로 표현되고 서양 언어에서는 명사로 표현된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마시다’라는 동사는 ‘사람’과 ‘차’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표현한다. 동양에서는 이렇게 개체 간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동사적 표현을 많이 쓴다. 그러나 ‘사람’과 ‘차’가 서로 독립된 개체라고 믿는 서양에서는 ‘차’라는 명사를 통해 질문의 의미를 표현한다. 이처럼 사물들이 독립된 개체라고 믿는 서양에서는 당연히 각 개체의 속성을 대표하는 ‘명사’가 언어의 중심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사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동양에서는 다양한 사물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표현하는 ‘동사’를 많이 사용한다.

또 다른 실험 하나. 여기, 한 남자가 절규하고 있는 그림이 있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절규하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동양인 : 주변 분위기가 음산하잖아요. 저 뒤에 걸어가는 남자 두 명이 이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한 것 같은데요.
서양인 : 이 사람은 패닉 상태에 빠졌어요. 마음 속으로부터 깊은 공포를 느끼고 있는 거예요. 정신적으로 불안한 사람인 것 같아요.

동양인들은 대체로 주변의 분위기와 상황을 중심으로 그림 속 인물의 상태를 묘사했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인물의 감정 상태, 정신 상태를 중심으로 설명하는 경향을 보였다. 동양인들은 사람의 감정 상태를 해석할 때에도 그 사람이 처한 환경과 맥락을 고려하지만, 서양인들은 그것을 개인의 내적 본성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제2부 ‘고맥락적 문화 vs. 저맥락적 문화’에서는 텍스트를 둘러싼 맥락과 상황을 중시하는 동양인의 ‘고맥락적 커뮤니케이션’과 텍스트 자체의 의미 자체에 집중하는 서양인의 ‘저맥락적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알아본다. 예를 들어 동서양의 전통적인 인물화들을 비교해보면 소위 ‘컨텍스트’에 대한 동서양의 관심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서양의 인물화는 사람 자체의 속성에만 관심을 갖는 서양적 관점을 반영하여 사람을 크게 그린다. 그러나 동양의 인물화는 항상 그 인물이 처한 맥락을 알기 위해 배경을 함께 그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전체 그림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
현대의 동서양인들에게도 이러한 차이가 나타난다. 서양의 대학생들과 동양의 대학생들에게 친구의 사진을 찍어주도록 했다. 서양의 대학생들은 친구의 사진을 찍을 때 사람이 화면에 꽉 차도록 인물을 중심으로 찍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동양의 대학생들은 넓은 구도로 인물과 배경을 함께 담아 사진을 찍었다. 여행지의 동양인들은 배경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사진을 찍는다. 동양인들은 맥락에 따라 중심 사물도 달라 보이기 때문에 배경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맥락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즐기고 싶어한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인물을 중심으로 사진을 찍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동양인만큼 많은 사진을 찍지 않는다.

제3부 ‘아웃사이더 관점 vs. 인사이더 관점’에서는 집단주의와 물아일체의 정신이 발달한 동양과 개인주의와 과학이 발달한 서양을 비교 분석한다.
A1. ‘내가 좋아하니까 상대방도 좋아할 거야.’
A2. ‘내가 배고프니까 다른 사람들도 배고플 거야.’

B2. ‘사람들이 마음에 들어 하니까 나도 좋아.’
B3. ‘저 사람이 인정해줬어. 잘한 거야.’
A와 B의 두 가지 사고방식이 있다. 당신은 평소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는 편인가? A는 판단의 기준을 내 안에 두는 방식이고 B는 판단의 기준을 나의 외부, 즉 타인에게 두는 방식이다. 서양인은 보통 A의 방식을 취하고 동양인은 B의 방식을 취한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것일까? 연구에 의하면 서양인은 ‘인사이더 관점’을 갖고 있고 동양인은 ‘아웃사이더 관점’을 갖고 있다고 한다. 서양의 투시법, 즉 1인칭 시점은 관찰자의 시선 방향이 안에서 밖으로 향한다. 따라서 투시법을 다른 말로 ‘인사이더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동양인들의 ‘아웃사이더 관점’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신을 보는 것으로서 2인칭 시점, 또는 3인칭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인사이더 관점’을 가진 서양인들은 자기중심적이다. 서양인들은 자기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집중하기 때문에 상대방도 자기처럼 생각하고 느낄 거라 믿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자신이 화가 난 상태이면서 상대방에게 ‘어머, 너 화난 것 같다’라고 말하는 현상이다. 반대로 ‘아웃사이더 관점’을 가진 동양인들은 상대중심적이다. 예를 들어, 동양인은 자신이 슬플 때 상대방이 자신을 보면서 느끼게 될 동정심을 함께 느낀다. 또 수치스러움을 느낄 때 상대방이 자신에게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멸의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이렇게 동양인들은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제4부 ‘집단주의 vs. 개인주의’에서는 교역 문화에 기반한 서양의 개인주의와 농경 문화에 기반한 동양의 집단주의로 인해 생기는 차이점들을 살펴본다. 이를 위해 동양인과 서양인에게 4자루의 파란색 펜과 1자루의 흰색 펜, 이렇게 5자루의 펜을 보여주며 마음에 드는 한 가지를 고르게 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 동양인은 파란색 펜을 가져가는 경향이 컸고 서양인은 흰색 펜을 가져가는 경향이 컸다. 이번에는 4자루의 흰색 펜과 1자루의 파란색 펜, 이렇게 5자루의 펜으로 바꿔서 제시했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 동양인은 흰색 펜을 가져가는 경향이 컸고 서양인은 파란색 펜을 가져가는 경향이 컸다. 위의 실험 결과는 무엇을 의미할까? 제시된 펜의 색깔과 상관없이 동양인은 하나만 튀는 것보다는 여러 개로 제시되어 무난해 보이는 것을 선호했다. 그러나 서양인은 자기만 가질 수 있는 단 한 개뿐인 펜을 선호했다.
동양에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있다. 예부터 개인이 튀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한 것이다. 우리는 ‘다르다’는 말과 ‘틀리다’는 말을 혼동해서 쓰기도 하는데, 이것 역시 남과 다른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을 반영하는 예이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독립적인 삶을 지향하고 자신이 타인과 구분되는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때문에 선택을 할 때도 다른 사람들이 안 고를 것 같은 특이한 선택을 하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 이런 성향이 개인의 독립성을 더욱 강화시킨다.

동양과 서양이 그리는 완벽한 원을 꿈꾸며
이처럼 수많은 심리학 실험들이 밝혀낸 동양인과 서양인의 인지 과정 차이, 사고 방식 차이, 가치관 차이 등은 동서양의 차이가 비단 수천 년 전의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까지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사람들의 행동이나 생각, 태도의 차이가 단순한 문화의 차이에 그치지 않고 철학의 차이, 더 나아가서는 문명의 차이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완벽할 수 없듯이 모든 문화는 완벽하지 않다. 어떤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낫다고 하는 것은 보는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이기 때문에 특정 문화의 우열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런 측면에서 비교문화 연구는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문명의 충돌』의 저자 새뮤얼 헌팅턴은 ‘다른 문화의 사람들도 다 나처럼 생각할 것’이라는 생각이야말로 가장 위험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전쟁과 테러 같은 현대 사회의 분쟁은 대부분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발생하고 있다. 타인에 대한 이해, 차이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반목과 다툼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서양 사고방식 차이의 비밀을 알아보고, 그 같은 차이가 발생하게 된 역사적, 문화적, 심리적 원인을 추적하는 『동과 서』가 우리 스스로에 대한 이해는 물론 타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서양인은 보려 하고, 동양인은 되려 한다.
Westerners want to see the reality,
and Easterners want to be the reality.

― W. 셀든W. Sheldon


사용자 삽입 이미지


WRITTEN BY
archjang
일단.. 만들면서 생각해보자. ^^

,